최일 잠수함연구소장(예비역해군대령, 손원일함 초대함장, 해군사관학교 초빙교수)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수중에서 잠수함이 사고가 나서 가라앉았다면 잠수함 승조원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①잠수함에서 파라오 슬롯하거나②구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파라오 슬롯하는 방법에는 승조원들이 파라오 슬롯기구에 옮겨 탄 다음 기구를 분리하여 파라오 슬롯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러한 파라오 슬롯 기구를 갖춘 잠수함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잠수함에서는 개별 파라오 슬롯을 하는 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오늘은 잠수함 승조원들이 조난 잠수함에서 탈출할 때 사용하는 파라오 슬롯에 대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수상함에서의 파라오 슬롯과 잠수함에서의 파라오 슬롯이 무엇이 다른 지 한번 생각해보죠.
수상함에서는 일반 선박과 마찬가지로 구명 조끼를 사용합니다. 반면 잠수함에서는 특별하게 생긴 파라오 슬롯을 사용합니다. 왜 그럴까요? 잠수함에서의 파라오 슬롯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① 압축된 공기에 노출된다
먼저 인체가 압축된 공기에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스킨스쿠버를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사람이 수중에서 숨을 쉬면 해당 수심의 압력을 받은 공기로 숨을 쉬게 됩니다. 조난 잠수함에서도 마찬가지 파라오 슬롯직전에는 해당 수심의 압축된 공기를 마시고 올라오게 됩니다. 이 압축공기를 마신상태에서 심해에서 수면으로 너무 빨리 올라오면 감압병에 걸릴 수도 있고, 폐에 이 압축공기를 간직하고 있으면 수면에 올라오는 동안 폐가 팽창되어 파열될 수 있습니다.
② 수면까지 올라오는 일정 시간 동안 수중에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수면까지 올라오는 일정 시간동안 수중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상에서는 배에서 바로 뛰어내려도 공기중에 있기에 숨쉬는 데는 문제없지만, 조난 잠수함에서 파라오 슬롯자가 수면까지 올라오는 시간 동안에는 물속에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수면까지 올라오는 동안 숨을 잘 참든지 아니면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장치가 필요합니다.
③ 수면위에 올라와서도 생존이 어렵다.
세번째는 수면위로 올라오기도 어렵지만 올라와서도 생존 확률이 낮다는 것입니다. 파라오 슬롯 전 잠수함의 상태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잠수함을 정상화 시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대기 중에는 약21%산소가 있는데 만약 잠수함내 산소가 부족해서18%미만의 산소를 마시게 되면 저산소증으로 의식 잃게 됩니다. 최후의 조치로 탈출을 결심하고 파라오 슬롯을 입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승조원들은 이미 체력이 소진되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 수면위로 올라와서도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잠수함 탈출의 특성을 고려하여 탈출하는 잠수함 승조원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잠수함 파라오 슬롯은 발전되어 왔습니다.
최초로 잠수함 탈출에 사용된 파라오 슬롯(파라오 슬롯시스템)은 1911년 독일잠수함U3가 침몰했을 때 사용된 독일 드레거(Draeger)호흡장치입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산소를 흡입하는 구조로 되어있어 잠수함내 오염된 공기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가라앉은 잠수함에서 수면으로 부상하는 과정에도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1929년 영국에서도Davis Submarine Escape Apparatus(DSEA)라고 하는 유사한 호흡장치를 만들었습니다. 미국도 이와 유사한 몸슨렁(Momsen Lung)을 만들어1950년대까지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장치는 파라오 슬롯이라기 보다 가장 원시적인 잠수함 탈출용 호흡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 동안 호흡가능한 휴대용 호흡장치를 이용해서 수중이나 유해가스, 연기 속에서 호흡 가능한 장치였습니다. 이러한 장치는 마우스를 반드시 물어야 했기에 체력이 소진된 잠수함 승조원들이 사용하기에는 제한이 많았습니다.
1962년 미해군은 휴대용 호흡장치의 단점을 보완하여 슈타인케 후드(Steinke Hood)를 도입했습니다. 이는 머리를 감싸는 후드가 달린 팽창식 구명조끼로 보다 안정적으로 밖을 볼 수 있고 후드에 갇힌 공기를 이용하여 마우스를 물지 않아도 쉽게 호흡할 수 있었습니다. 이 슈타인케 후드는 착용 후 실제97미터 깊이에서 파라오 슬롯 테스트에 성공하였으며, 냉전 기간 내내 미해군 모든 잠수함의 표준 장비가 되었습니다.
이 슈타인케 후드는 호흡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력을 형성해서 빨리 수면위로 올라올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슈타인케 후드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1950년 영국잠수함 트루큘런트(HMS Truculent)함이 영국 해안에서 상선과 충돌 후 침몰하여72명의 승조원이 수면에 도달했지만 이중15명만 생존이 가능했습니다. 나머지는 저체온증과 조류에 휩쓸려 실종된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사람이 맨몸으로 바다에 빠졌을 경우 해수온도가4도(℃)라고 하면30분이내 의식을 잃고1시간반이내 사망하게 됩니다.
이 사고로 탈출한 잠수함 요원이 수면에 올라와서도 오랜 시간 동안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파라오 슬롯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래서 개발된 파라오 슬롯이 이와 같은 전신을 감싸는 파라오 슬롯이었고1990년대부터 전세계 잠수함 대부분이 전신 파라오 슬롯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슈타인케 후드형은 수심 약100미터까지 파라오 슬롯이 가능한 반면, 전신 파라오 슬롯을 착용하면 약200미터까지 파라오 슬롯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이 파라오 슬롯을 입으면 부상후에도 체온 유지가 가능해서 오랜 시간동안 수면상에서 생존할 수 있습니다.
조난당한 잠수함에서 파라오 슬롯을 착용하고 탈출하는 환경은 특별하므로 잠수함 승조원들은 평시에 탈출훈련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잠수함을 운용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파라오 슬롯 훈련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훈련장이 있고 모든 잠수함 승조원은 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탈출훈련은 파라오 슬롯을 입고 탈출실에서 수면으로 자유상승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파라오 슬롯실로 사람이 들어가면 안쪽 해치를 닫고 물을 채우고 압력평형을 합니다. 그리고 바깥 해치를 열고 위로 올라옵니다. 이 훈련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부상하는 과정에 숨을 계속 내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압축공기를 마친 상태에서 숨을 참으면 폐에 있는 공기가 팽창되어 폐가 파열되기 때문입니다.
전신용 잠수함파라오 슬롯은 여러 종류가 있으며 상용으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잠수함내에는 승조원 수 보다 많은 수의 파라오 슬롯 백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이 백을 풀어 파라오 슬롯을 꺼낸다음 착용해야 합니다.
이 파라오 슬롯에는 눈에 착용할 수 있는 고글이 있습니다. 소매 옆에는 방수 장갑이 있고, 기저기도 있습니다. 수면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구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기에 기저기를 차야 합니다. 이 거저기를 체온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가슴쪽에는 램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야간에 깜빡여서 파라오 슬롯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용도이죠. 이 램프를 작동시키는 배터리는 아래에 부착되어 있는데 연결된 줄을 당겨서 배터리를 가동시켜야 합니다.
워키토키 같은 필요한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있고 파라오 슬롯자들간 서로 연결을 할 수도 있고 이 줄을 잡고 파라오 슬롯자를 끌 수도 있는 줄이 있습니다.
호각이 붙어 있어 호각을 불어 파라오 슬롯자의 위치를 알릴 수 있습니다.
호흡을 할 수 있도록 안쪽과 바깥쪽에 레귤레이터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코로 물이 들어오지 않게 하는 코마개도 있습니다.
제가 한번 입어보는 영상을 동영상에 첨부있으니 참고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