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씨(가명)(사진=이주은씨)
이주은씨(가명)(사진=이주은씨)

탈북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이주은씨(가명)에게는보살핌을 받지 못한 인터넷 바카라 아이들의 모습이여전히 생생하다.

이씨가 한국와 와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이씨에게 늘 떠나지 않은 고민이 또 하나 있다. 북한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갔다. 북한을 모른 채 살아가면 정체성을 잃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그녀를 붙들었다.

북한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현재 북한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북녘의 아이들을 마음에 품고, '나'를 알아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주은씨를 만나 봤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길

외할아버지가 중국 공산당이었는데 북한으로 넘어오셨다. 김일성 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중국에 많이 왕래해서 형편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1990년대 김일성의 사망과 고난의 행군이 겹치면서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라는 배급으로 줄 쌀도 없는 지경이라 결국 할머니가 중국으로 몰래 넘어가셔서 매달 보내주신 돈으로 온 가족이 생활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중국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91010, 당 창건일에 탈북했다. 20대라는 나이에 중국 인터넷 바카라 돈 벌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으로 탈북했다. 그런데 막상 중국에 가보니 상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말도 안 통하고 숨어 지내야 하는 신세였던 것이다.

당시 브로커가 지금 중국 내륙 지방으로 팔려 가면 고생할 거 같다며 한국으로 가라고 했다. 사촌 동생이랑 며칠 고민했다. 사촌 동생이 한국 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다며 돈 벌어서 다시 들어오자고 했다. 돈 벌 수 있다는 얘기에 한국행을 결심했다. 사촌 동생이랑 한국에서 정착하고 나서70대 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포함한가족들을 모셔왔다.”

"나라에게 바랐던 것은 밥 반공기일 뿐"

"외할아버지가 공산당원이어서 집안 대대로 당에 충성하며 규칙에 따른 성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정말 숨이 막혔다. 그러다 삼촌 집에서 어린 사촌 동생이 굶는 모습을 보고 훔쳐서라도 뭐라도 먹이고 싶었다. 매점에서 파는 달걀을 보면서 너무 훔치고 싶었다. 그때 왜 사람들이 밖에서 도둑질을 하는지, 왜 중국으로 넘어가는지 알 거 같았다.

1994년 김일성 사망때7살이었다. 학교에 갔는데 미공급 때문에 학교 문도 닫혀서초등학교3학년되서야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먹고 살기 어려워서 학교에 이름만 걸어놓고 학교에 나오지 않아 이름 석 자도 못 쓰는 친구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아이들이 많았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북에서20년 동안 나름 사회주의를 지키며 열심히 일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왜 이러고 살고 있나 싶었다. 사실 나라에 대해서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사흘 동안 굶었던 인터넷 바카라 배, 어린 사촌 동생의 작은 배만을 채워줄 밥 반 공기만을 바랐다."

탈북민 정착, 탈북민의 도움 필요

하나원에서 나올 때 도우미 분이 집에 데려다 주고 가셨다. 아무것도 없는 집에 도착하니 하늘에서 툭 떨어진 외계인 같았다. 그 다음 날 일어났는데 도우미들이 안 왔다. 일단 혼자 마트 가고 은행에 갔는데 여러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하는데 수월하지 않았다.

한국과 같은 사회 시스템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참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나원에서 분명히 교육해주고 알려줬겠지만, 막상 나인터넷 바카라 살아보니 누구한테 물어볼지, 어디 인터넷 바카라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 몰라서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억양도 다르고 사용하는 단어도 달라서 도움을 청하거나 말하는 것도 자꾸 위축됐다. 사람들이 중국에서 왔냐고 자꾸 물어봐서 그런 시선이 점점 더 부담됐다. 원래 북에서 선동원을 할만큼 활동적이고 외향적이었는데 여기 와서 입을 점점 안 열게 됐다.

지금 와서 보니 하나원에서 나온 탈북민들을 돕는 도우미 분들이 먼저 한국 사회에 정착한 탈북민이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2주 정도 같이 생활하면 잘 적응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낯선 시스템에 적응했던 경험들, 겪었던 어려움을 나누면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북한학 공부 꾸준히 해나고파"

"인터넷 바카라 대한 추억 중에 친구들과의 추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북한은 중고등학교가 총6년이다. 6년 동안 반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올라간다. 또 대부분 동네 친구여서 추억이 너무 많다.

반 친구들끼리 계곡에 놀러 인터넷 바카라 고기도 잡고 어죽도 끓여 먹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춤추고 놀았다. 그런 장면들이 지금도 꿈을 꾸면 나타난다. 종종 꿈이 너무 생생해서 일어나서도 한참 끔뻑거리다가 꿈이란 걸 깨닫곤 한다.

북한이 빨리 개방돼서 더 좋은 사회로 발전됐으면 좋겠다.이를 위해 북한학을 꾸준히, 더욱 깊이 공부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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